광산 김씨 항렬표 - 문숙공파, 문정공파, 대동 항렬의 유래와 돌림자 정리
광산 김씨의 기원과 본관의 유래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전해지는 명문가문으로, 그 시조는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 김흥광(金興光)이다. 그는 고려가 삼한을 통일하자 신라의 멸망을 예감하고 경주를 떠나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은거하면서 광산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때 고려 태조 왕건은 그를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으로 봉하였고, 후손들이 본관을 ‘광산(光山)’으로 정하였다. 이후 그의 후손 중 여덟 명이 고려 시대의 고위 관직인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여 명문으로 자리 잡았다.
광산김씨는 역사 속에서 학문과 충절, 예학(禮學)의 계승으로 이름을 남겼으며, 특히 조선시대에는 정승, 대제학, 청백리, 의병장 등을 배출하며 나라의 기틀을 세운 가문으로 평가된다.
광산 김씨의 분파와 항렬의 체계
광산 김씨는 세대가 깊어지면서 여러 분파로 나뉘었는데, 크게 문정공파(文正公派), 문숙공파(文肅公派), 양간공파(良簡公派) 등이 있다. 이 파들은 시조 김흥광의 후손으로, 조선과 고려를 거쳐 각각의 인물을 중심으로 가문의 흐름이 이어졌다. 각 파는 고유의 항렬표를 사용하며, 항렬은 가문의 세대를 구분하고 이름자에 돌림자를 넣어 혈통의 계승을 명확히 하는 전통적 체계이다.
광산 김씨의 항렬표는 ‘대동항렬(大同行列)’이라 불리며 모든 분파가 공유하는 표준 항렬을 기본으로 삼는다. 이 항렬을 기준으로 각 파는 약간의 변형이나 시기별 돌림자의 차이를 가진다.
광산 김씨 항렬표
대동 항렬은 광산 김씨 전체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광산 김씨 항렬표로, 31세부터 50세까지의 세대를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 31세 진(鎭)
- 32세 택(澤)
- 33세 상(相)
- 34세 기(箕)
- 35세 재(在)
- 36세 현(鉉)
- 37세 영(永)
- 38세 수(洙)
- 39세 용(容)
- 40세 중(中)
- 41세 선(善)
- 42세 순(淳)
- 43세 동(東)
- 44세 환(煥)
- 45세 규(奎)
- 46세 용(鏞)
- 47세 연(淵)
- 48세 식(植)
- 49세 형(炯)
- 50세 곤(坤)
이 항렬은 후손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쓰이며, 예를 들어 43세면 ‘동OO’ 혹은 ‘O동’ 식으로 이름이 정해진다. 항렬자는 세대의 상징이자 조상의 유훈을 잇는 상징으로, 광산 김씨에서는 이를 엄격히 지켜 왔다.
광산 김씨 문정공파 항렬표와 돌림자
문정공파는 광산 김씨의 중심 계파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명문 가문이었다. 문정공파의 대표 인물로는 김국광(金國光, 좌의정, 광산부원군), 김장생(金長生, 예학의 대가), 김집(金集, 대제학) 등이 있다. 문정공파의 항렬은 대동항렬과 동일한 구조를 따르며, 36세부터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 36세 현(鉉)
- 37세 영(永)
- 38세 수(洙)
- 39세 용(容)
- 40세 중(中)
- 41세 선(善)
- 42세 순(淳)
- 43세 동(東)
- 44세 환(煥)
- 45세 규(奎)
- 46세 용(鏞)
- 47세 연(淵)
- 48세 식(植)
- 49세 형(炯)
- 50세 곤(坤)
문정공파는 특히 조선 예학의 기틀을 세운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의 학맥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의 아들 김집(金集)은 아버지의 학문을 이어받아 대제학으로 문묘에 배향되었으며, 부자(父子)가 함께 문묘에 배향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문정공파는 예학뿐 아니라 정치, 문학, 군사 분야에서도 수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김만기, 김만중 형제는 각각 대제학과 문학가로, 김만중은 《구운몽》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문정공파는 광산 김씨의 정신적 중심이자, 대한민국 성리학의 뿌리를 이룬 가문으로 평가된다.
광산 김씨 문숙공파 항렬표와 돌림자
문숙공파(文肅公派)는 문정공파와 함께 광산 김씨를 대표하는 주요 계파로, 문숙공 김익겸(文肅公 金益兼)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조선 인조대의 공신 가문으로 충절과 예학을 중시하였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시기 충효의 정신을 지켜낸 가문으로 알려졌다.
문숙공파 항렬은 문정공파의 항렬과 대체로 일치하나, 일부 세대의 이름자에 고유의 변형이 있다.
- 36세 호석(鎬錫)
- 37세 원한(源漢)
- 38세 식영(植榮)
- 39세 희광(熙光)
- 40세 중성(中聲)
- 41세 선(善)
- 42세 순(淳)
- 43세 동(東)
- 44세 환(煥)
- 45세 규(奎)
- 46세 용(鏞)
- 47세 연(淵)
- 48세 식(植)
- 49세 형(炯)
- 50세 곤(坤)
문숙공파의 항렬체계는 학문과 덕행을 중시하며 ‘성리와 충효’를 가문 정신으로 삼는다. ‘호석’, ‘원한’ 등의 항렬자는 가문 내에서 자주 쓰이며, ‘호’는 강철처럼 굳은 의지, ‘한’은 깊은 근원을 의미한다. 문숙공파는 문정공파와 더불어 예학과 청렴의 전통을 지켜온 가문으로, 후손들은 현재까지 각 지역 종중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광산 김씨의 분파별 대표 인물
광산 김씨는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수많은 학자, 문신, 무신, 충신을 배출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음과 같다.
- 김정(金鼎): 시조의 18대손으로 고려 때 삼중대광에 올라 가문의 위상을 높였다.
- 김국광(金國光): 조선 초기 좌의정, 광산부원군으로 봉해졌으며 문정공파의 중심인물.
- 김장생(金長生): 예학의 태두, ‘사계’로 불리며 조선 예제의 근본을 세운 인물.
- 김집(金集): 김장생의 아들, 대제학을 지냈으며 부자 나란히 문묘에 배향됨.
- 김만기(金萬基): 대제학, 숙종의 장인으로 인선왕후의 부친.
- 김만중(金萬重): 소설 《구운몽》, 《사씨남정기》의 작가로 문학의 거장.
- 김양택(金陽澤): 대제학·영의정을 역임하며 3대 대제학 기록을 남김.
- 김천택(金天澤): 《청구영언》을 편찬한 가인(歌人).
- 김덕령(金德齡): 임진왜란 의병장으로 광산 김씨의 충절을 대표하는 인물.
광산 김씨의 주요 세거지
광산 김씨의 후손들은 전국 각지에 분포해 있으며, 주요 세거지는 다음과 같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
-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덕산리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덕진면, 군서면 일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신성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난산리 등
이 지역들은 세거지이자 사당과 재실이 남아 있는 곳으로, 후손들은 정기적으로 시향(時享)을 지내며 조상의 유훈을 잇고 있다.
광산 김씨의 인물 배출 현황
조선시대 광산 김씨는 문과 급제자만 265명을 배출했으며, 정승 5명, 대제학 7명, 청백리 4명, 왕비 1명(인선왕후 김씨)을 배출하였다. 이는 조선 왕조 역사상 손꼽히는 명문 가문으로서, 충·효·예·학의 가풍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
광산 김씨는 신라 왕실에서 유래한 명문 가문으로,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학문과 충절, 예학의 전통을 이어왔다. 문숙공파와 문정공파는 광산 김씨의 양대 중심 축으로, 항렬을 통해 세대 간의 혈통을 명확히 하고, 학문과 덕행의 가치를 후손들에게 전해왔다. 대동항렬은 이러한 전통을 상징하는 가문의 뿌리이자, 세대를 잇는 정신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전국 각지의 광산 김씨 종중은 항렬을 지키며, 선조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