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조씨 항렬표(돌림자), 족보
함안 조씨의 인구 수와 본관의 기원
우리나라 성씨 중 조씨(趙氏)는 본관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며, 대표적으로 함안 조씨와 창녕 조씨가 있습니다. 이 중 함안 조씨(咸安 趙氏)는 비교적 인구는 적은 편이지만, 역사적으로 매우 유서 깊은 가문입니다. 2015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함안 조씨는 약 6만 명 내외의 인구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성씨 분포에서 중위권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함안 조씨의 본관은 경상남도 함안군으로, 이 지역은 신라시대에는 아시량국(阿尸良國), 고려시대에는 함주(咸州)라 불렸던 곳으로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고장입니다. 함안 조씨는 이곳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삼아 대대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함안 조씨 시조 조정(趙鼎)의 역사적 배경
함안 조씨의 시조는 조정(趙鼎)으로, 그는 중국 후당(後唐)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생 조부(趙釜), 조당(趙唐)과 함께 신라 말기에 귀화하여 고려의 건국 과정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특히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931년 고창성(현 안동) 전투에서 견훤의 후백제 군을 대파하며 개국 벽상공신이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그는 대장군 원윤(元尹)의 벼슬에 오르며, 고려 통일의 주축 세력 중 하나로 활약했습니다. 후손들은 이 공을 기려 함안을 본관으로 삼았고, 조정을 가문의 시조로 삼았습니다.
시조 조정은 무장하고 귀화한 7형제 중 한 명으로, 김선평, 권행, 신숭겸 등과 의형제를 맺고 고려 건국에 헌신했다고 전해집니다. 칠현사(安東)와 충렬사(大邱 동구)에 제향되며 그의 충의와 공훈은 오랫동안 기려지고 있습니다.
금은(琴隱) 조열과 문중 계보의 실체
함안 조씨의 실질적인 문헌 고증상 최초 인물은 금은 조열(趙悅)입니다. 그는 고려 말 공민왕 때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냈으며, 고려 멸망 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켜 함안 군북면에 은거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조열의 손자대에 이르러 어계 조려(趙旅)가 조선시대 대표 인물로 등장하게 됩니다. 조려는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충절의 상징이며, 그의 후손 대부분이 오늘날 함안 조씨의 주류를 이룹니다. 어계 조려는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서산서원에 배향되었으며, 문집 『어계집(漁溪集)』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인물들의 활약은 함안 조씨가 단지 귀화 가문에 그치지 않고, 고려와 조선에 걸쳐 충신, 학자, 관료를 다수 배출하며 중흥의 역사를 이뤘음을 보여줍니다.
함안 조씨 주요 인물 계보 정리
- 조정(趙鼎): 시조. 고려 개국 벽상공신. 후당 귀화인.
- 조열(趙悅): 고려 말 공조전서. 금은(琴隱)이라는 호로 불리며 함안 세거 기반 형성.
- 조려(趙旅): 생육신, 이조판서 추증. 시호 정절(貞節).
- 조순(趙舜): 문과 급제, 이조참판. 조려의 손자.
- 조삼(趙參): 사헌부 집의. 호 무진. 조순의 동생.
- 조적(趙績): 판결사. 조삼의 동생.
- 조종도(趙宗道): 대소헌. 남명 조식의 문인. 시호 충의(忠毅).
- 조임도(趙任道): 간송. 장현광의 문인.
함안 조씨 항렬표 (돌림자)
함안 조씨는 정통 항렬 체계를 통해 후손의 이름을 지을 때 세대를 구분해왔습니다. 아래는 함안 조씨의 항렬표로, 좌우 위치에 따라 항렬자가 앞 혹은 뒤에 배치됩니다.
21세: 영(榮)◯
22세: 중(重)◯
23세: ◯진(鎭)
24세: ◯태(泰)
25세: ◯식(植)
26세: 성(性)◯
27세: ◯규(奎)
28세: 용(鏞)◯
29세: ◯제(濟), ◯하(河)
30세: ◯래(來), ◯상(相)
31세: 현(顯)◯, ◯묵(默)
32세: 재(在)◯, 주(周)◯
33세: ◯흠(欽), ◯호(鎬)
34세: ◯수(洙)
35세: 동(東)◯
36세: ◯환(煥)
37세: ◯배(培)
38세: 종(鐘)◯
39세: 한(漢)◯
40세: ◯근(根)
41세: 형(炯)◯
42세: ◯균(均)
43세: 호(鎬)◯
44세: ◯순(洵)
45세: 병(秉)◯
46세: ◯현(炫)
47세: 기(基)◯
48세: ◯석(錫)
49세: 영(泳)◯
50세: ◯수(秀)
51세: 병(炳)◯
이 항렬은 세대별 정통성을 유지하고 동일 세대 간 호칭 질서를 명확히 하며, 족보 편찬 시에도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함안 조씨 족보 간행 기록과 사대보
함안 조씨는 17세기부터 정기적으로 족보를 간행해 왔습니다. 주요 족보와 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갑진보(甲辰譜, 1664년 현종 5년)
- 최초의 함안 조씨 족보. 시조를 ‘신라 원윤’으로 표기.
- 무오보(戊午譜, 1738년 영조 14년)
- 시조를 ‘고려 대장군 원윤’으로 수정. ‘신라 원윤’은 오기라고 판단.
- 경자보(庚子譜, 1780년 정조 4년)
- 기존 기록 유지. 시조의 고려 공신설 강조.
- 을유보(乙酉譜, 1825년 순조 25년)
- 사대보의 결정판. 고려 귀화 기록과 공신 기록 재확인.
- 기미보(己未譜, 1979년)
- 시조의 후당 귀화, 고려 건국 공신 행적을 상세히 기술.
- 역사적 정황과 고려사 및 동국명현언행록 등 다양한 문헌 비교를 통해 객관적 검토 시도.
이러한 족보들은 단순한 혈통 기록이 아니라, 함안 조씨의 역사, 명문가로서의 자부심, 충절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
함안 조씨는 단지 한 성씨의 뿌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의 건국과 조선의 유교 정치질서를 견인한 충절과 학문의 명문 가문입니다. 조정에서 조열, 조려로 이어지는 흐름은 그 자체가 한국사의 한 줄기라 할 수 있으며, 항렬표와 족보는 그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실질적 장치입니다.
가문의 뿌리를 잊지 않고 그 정신을 계승해 가는 함안 조씨 후손들은, 선조들의 발자취를 기억하며 오늘날에도 지역사회와 국가를 위한 충성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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